제13회 아트부산, 상반기 최대 미술장터의 생존 전략
상반기 미술시장을 대표하는 아트페어 아트부산(5. 9~12)이 부산 벡스코에서 열렸다. 13회를 맞은 올해 행사에는 20개국 갤러리 129곳이 참여했다. 국내에선 가나아트 국제갤러리 리안갤러리 조현화랑 학고재 PKM갤러리, 해외에서는 소시에테 야리라거갤러리 에프레미디스 페레스프로젝트 탕컨템포러리아트 화이트스톤갤러리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유동성 악화와 부동산 악재의 영향으로 아트마켓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이번 실적은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이 열리는 하반기 시장의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온 미술계의 관심이 모였다. 이번 아트부산의 평가는 뚜렷하게 엇갈렸다. 시장 관계자 사이에선 갤러리 수가 줄고 판매액이 감소한 것에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왔고, 컬렉터와 관람객층은 신진 작가를 위한 자리가 늘고, 뮤지엄급 퀄리티의 특별전, 관람 환경을 개선했다는 점에 좋은 점수를 줬다.
올해 국내 시장의 바로미터
먼저 위기감을 높인 것은 갤러리현대 더페이지갤러리 페이스갤러리 타데우스로팍 펄램갤러리 에스더쉬퍼 등 국내외 대형 갤러리가 불참한 데 있다. 매년 화제가 되었던 부스인 만큼, 행사의 위상이 약해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나아가 총매출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작년보다 매출이 떨어졌으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행사 첫날 ‘오픈 런’은 보이지 않았고, 상당수 화랑은 불황에 접어들었던 작년보다 판매 실적이 낮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종현(국제갤러리), 윤형근(PKM갤러리), 김길후(학고재), 우국원, 웨 민쥔(탕컨템포러리아트) 등이 억대 판매고를 기록했지만 ‘팔리는 것(곳)만 팔린다’는 갤러리 양극화 현상에 가깝다.
한편 아트부산이 호평을 받은 부분은 밀도 높은 볼거리를 통한 대중성 강화였다. 신진 컬렉터와 일반 관람객을 새로운 구매층으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이 효과를 거뒀다. 미술기관과 슈퍼 컬렉터의 작품 구매가 줄어든 상황에서 중저가의 젊은 작가 작품으로 신규 컬렉터를 유인하고, 대규모 특별전으로 페어를 찾는 관람객을 늘려 컬렉팅 문화의 활성화를 노렸다. 이 전략의 중심축을 담당한 것은 특별전. 주연화 홍익대 교수가 디렉터로 나서 ‘아시아 아트씬’과 ‘동시대 여성 미술’을 중심으로 총 9개의 전시를 펼쳤다. 일반적인 아트페어에서 만나기 어려운 관객 참여예술, 퍼포먼스아트, 장소특정적 미술, 대형 조각, 미디어아트 등을 선보여 화제성과 완성도,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노렸다.
특히 특별전 <허스토리>는 현대미술 1세대 여성 작가의 작품 60여 점을 한데 소개하는 미술관급 라인업을 자랑한다. 정강자, 샤오루, 쿠사마 야요이, 신디 셔먼, 제니 홀저, 키키 스미스 등의 대표작을 망라했다. 나아가 문학과 미술을 연결한 존 지오르노, ‘불의 예술가’ 장 보고시안,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대규모 설치작업으로 재현하는 유명균 등의 개인전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솔로 부스 형식의 특별전은 갤러리의 별도 판매 공간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에는 미술관, 아티스트 파운데이션 등과 적극 협력해 전시 자체에 집중했다. 컬렉터에서 미술전문가, 대중까지 두루 만족하는 폭과 깊이를 갖췄다는 평이다. 그 덕분일까, 이번 행사에는 홍콩, 자카르타, 싱가포르 등 아시아 각지의 유명 컬렉터는 물론 가족 단위 관람객도 대거 방문해 기대감을 모았다.
여기에 젊은 작가와 중소 화랑 중심의 ‘퓨처’ 섹션이 준 특별전 역할을 톡톡히 했다. 퓨처 섹션은 신생 갤러리와 40세 미만 신진 작가로 구성된 솔로 부스전이다. 양현모(로이갤러리), 윤일권(별관), 이영준(스페이스카다로그), 이영호(프람프트프로젝트), 한지민(페이지룸8), 허수영(학고재), 미유 야마다(비스킷갤러리), 코스타스 파파코스타스(갤러리언플러그드) 등 마켓에서는 낯설지만 아트러버 사이에서는 각광받는 국내외 유망주가 총집합했다. 한 관계자는 부스전 전반을 두고 방문객 수는 예년에 비해 다소 줄었지만, 체류 시간이 훨씬 늘어났다고 평가했다. 작가와 작품에 관한 질문이 자유롭게 이어지는 등 갤러리와 관람객의 커뮤니케이션도 활발한 편에 속했다. 장터보다 ‘축제’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이 외에도 동선 구성과 부스 배열, F&B 라운지 등을 개선한 공간 기획도 쾌적함을 더했다. 부스 규모가 전반적으로 커지고 통로가 넓어졌으며, 휴게 공간을 곳곳에 배치해 관람 피로도를 줄였다. 작품은 물론 부스의 특성과 기획을 꼼꼼히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는 반응도 나왔다. 한편 아트부산은 출품작 정보와 작품 문의를 서비스하는 신규 애플리케이션 ‘아트라운드’도 론칭했다. 아트라운드는 오프라인 행사가 끝나더라도 온라인에서 아트페어 경험을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차후 글로벌 서비스를 구축해 해외 컬렉터에게 새로운 갤러리를 소개하고 육성하는 ‘인큐베이팅 채널’을 목표로 삼고 있다.
컬렉팅 문화의 활성화와 아트페어의 페스티벌화. 이번 아트부산이 겨냥한 비전이다. 모두가 프리즈 서울의 하이엔드 작품만을 노린다면 미술시장은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기 어렵다. 당장 판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신진 작가와 갤러리, 나아가 신규 컬렉터가 성장할 수 있는 판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외부 경제에 흔들리지 않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가 마련된다. 그리고 이는 한국 아트페어가 공통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아트부산의 성패가 중요했던 이유다.
◼︎ 『아트인컬처』 2024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