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없는 사람

이별에 성실한 이가 마지막으로 내리는 결단은 사진을 지우는 것이다. 이로부터 그는 약속했던 망각을 부여받지만 동시에 어떤 저주도 함께 앓게 된다. 그는 이제 빈 사진첩으로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 사진에 기대지 않고도 영원히 동반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일상의 암기가 간수할 만한 것을 선택해 만드는 기억의 연금술에서 비롯된다면, 망각은 사라진 것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남아버린 야금술을 말미암는다. 노순택의 사진엔 이런 야금술이 담겨있다. 작가는 대추리사태, 용산참사, 제주해군기지 반대 투쟁, 세월호 진상 규명 집회 등 정치적 순간에 빠짐없이 섰지만 그 장면을 낱낱이 기록하려 분전하는 저널리즘의 언어에 종사하지 않는다. <얄읏한 공>의 들판엔 민간인의 시위를 진압하러 투입된 군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망루의 불길과 주검을 모두 어둠으로 감춘 <남일당 디자인 올림픽>에는 오직 실루엣으로서 하나의 조형이 자리한다. <가뭄>엔 최루액을 내뿜는 살수차도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사람들도 생략되어 물줄기만이 남았다. 그러나 지워진 것이 있는 탓에 지워질 수 없는 운명을 부여받는 존재들이 눈을 뜬다. 나는 이제 군인 없이도 들판만으로 대추리의 비극을 떠올릴 줄 알게 되었다. 불길과 주검이 보이지 않아도 모든 조형에서 살고자 또 빼앗기지 않고자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망루에 올랐던 이들을 본다. 그리고 어느 흐르는 물만으로도 4월 16일을 그리고 거리에서 떠나보낸 한 노인과 만난다. 노순택의 사진 앞에서 우린 사라져버린 것들에 가장 성실하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곳에서 모든 그들을 기억할 줄 알겠다.

『아트인컬처』 뉴스레터 postcard_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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