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미술관,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념전 《우리가, 바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열사흘 뒤, 단원고등학교를 마주한 경기도미술관에는 합동 분향소가 설치됐다. 이후 4년 동안 91만 명이 넘는 시민이 이곳을 찾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과 아픔을 나눴다. 경기도미술관에선 2주기와 3주기, 7주기에 맞춰 추념전이 열렸고, 미술관은 애도의 공간을 넘어 예술과 사회의 연대 장으로서 공동체의 의미를 질문했다. 그리고 지난달 10주기를 맞아 네 번째 추념전 <우리가, 바다>(4. 12~7. 14)가 열렸다.
<사월의 동행>(2016), <너희를 담은 시간>(2017), <진주 잠수부>(2021) 등 세 개의 전시가 치러지는 동안 세월호 참사는 ‘예외적 사고’에서 ‘보편적 사건’으로 승화했다. 일련의 기획은 희생자와 유족의 문제를 전 국민적 비극으로, 정부의 실패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이제 <우리가, 바다>는 그 포커스를 ‘우리’에 맞춘다. “그날의 아픔을 만든 바다가 곧 우리이자, 아픔을 품고 나아가야 하는 것도 우리”(전시 서문)다.
전시는 슬픔과 분노에서 한 발짝 물러나 ‘성찰’의 시간으로 나아간다. 재난 앞에서 우리는 어떤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책무를 지니는가. 여기에 대답하기 위해 전시는 세 가지의 테마를 제시했다. 재난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것, 재난에서 예술의 책무에 관한 고민과 위로, 공동체가 함께 이뤄야 할 바람. 회화 조각 영상 설치 사진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17인(팀)이 참여해 하나의 ‘바다’를 이뤘다.
예술연대의 결과 겹
<우리가 바다>는 세월호 참사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작업은 물론, 그 이전에 제작되었거나 개인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것까지 서로 다른 맥락이 어우러진다. 주제를 세월호 너머로 확장하면서도 공동체의 상흔을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이야기로 수렴시켰다.
윤동천의 <노란 방>(2017)에는 세월호를 상징하는 리본 조각과 함께 말방울 소리가 퍼진다. 말방울은 산악 지대에서 위험을 알리거나 멀리 있는 말을 찾기 위해 쓰이는 도구다. 마령의 울림이 희생자를 부르는 초혼(招魂)을 의미한다면, 그 울림에 이끌려 공간을 찾은 관객은 참사의 희생자 혹은 생존자에 대입된다. 이 순간 세월호 참사는 ‘나’의 일이다. 누구도 당사자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완전히 도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감상자는 세월호 참사와 가장 가까워진다.
송주원의 <내 이름을 불러줘>(2024)는 춤으로 추모의 마음을 담는다. 희생자 304명의 이름을 몸짓으로 새겼다. 작가에게 세월호 참사는 304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죽음이 304건이 있었던 사건이다. 그러니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러야만 했다. 그는 작품에 대해 희생자를 “몸으로 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긴 상영 시간 동안 희생자를 품는 이가 안무가만은 아니다. 감상자 역시 그 시선을 따라 희생자의 이름을 눈으로 함께 써 내리고 품는다.
김지영의 <파랑 연작>(2016~18)은 서해훼리호 침몰,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등 과거에 발생한 32개의 재난을 파란 단색조로 그렸다. 구체적인 컬러가 사라진 장면은 시간에 따라 기억과 공감이 흐릿해진 망각을 은유한다. 그러나 동시에 파랑은 불길이 가장 높은 온도일 때 나타나는 색이기도 하다. 작품에는 우리가 과거를 잊어버린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다시 뜨겁게 진실을 대면하리라는 희망과 용기가 겹쳐있다.
이우성의 <세상은 내가 꿈꾸지 않게 한다>(2014)와 <밤 걷다 기억>(2017)은 밤바다를 바라보는 청년들을 묘사했다. 다른 곳에서 봤더라면 그저 아름답기만 했을 바다는 전시를 통해 무정하고 비극적인 풍경으로 재구성된다. 수면 위로 별빛이 반짝이지만 인물의 시선은 바다 아래 심연을 향해 깊어진다. 함께 출품된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2023) 연작은 고대 동굴벽화를 모티프로 제작한, 참사와 무관한 그림이다. 이우성은 당시 그림을 발표하며 삶과 시대를 후대에 남기는 것이 회화의 본령이라고 밝혔다. 이 말은 이제 이렇게 읽힌다. 우리는 그 이전의 바다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변함없이 영원히 기억되어야 한다.
이우성이 바다를 통해 세월호를 소환한다면, 황예지는 그 범위를 넓혀 재난을 일상에 연결한다. 작가는 안산 상록중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은사인 고창석 교사는 단원고 발령 한 달 만에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팽목항이 아닌 곳에서도 세월호를 끊임없이 떠올려야 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선이 빚어낸 사진은 세월호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아도 세월호를 떠올리도록 이끈다. 길거리의 교복, 흩어진 꽃잎, 깊은 터널만으로도 감각은 참사를 향해 다가간다. 재난은 특수한 상황과 장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재난은 모든 곳에 있다. 이를 인식할 때만 깨어있을 수 있다고 사진은 말한다.
김윤수의 <바람의 사원>(2014~24)은 발 모양을 따라 비닐을 오려내고 쌓는 방식으로 발자국 무리를 재현했다. 벽에서 시작해 전시 공간으로 이어진 파란 행렬은 바다에서 육지로, 애도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공동체를 은유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슬픔과 분노뿐이 아니다. 그날 이후 모두의 발 밑창에는 소금이 붙어있다는 것. 사라지지 않을 슬픔을 ‘우리’는 서로를 통해 견뎠다는 것. 작품은 포개진 수백의 두께처럼 끊임없이 이어졌던, 이름 없이 함께했던 ‘우리’의 연대 또한 되돌아보도록 이끈다.
세월호 참사 10년. 미술은 무엇을 말했고 더 말해야 하나. <우리가, 바다>는 이에 대한 응답이다. 예술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함께 느끼고 있으며 함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 전시는 참혹한 재난에서도 어떻게든 곁에 남아 함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을, 정치 경제적 언어로는 가닿을 수 없는 예술연대의 결과 겹을 보여준다.
◼︎ 『아트인컬처』 2024년 4월호